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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별안간 선방 안에 있는 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쾅!하는 요란스런 소리가

방안의 공기를 흔드는 순간, 손추평은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신니 할머님! 왜 벙어리나 귀머

거리처럼 못들은 척하고 계신가요? 이렇게 하신다고 일이 간단히 끝장 날 노릇이 아닌데요!”이 찰

나에 세심신니의 입술이 약간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천수관음의 귓전에 분명히 들려 온 말소리가

있었다.”나무 아미타불! 속세에 물든 몸이 전생에 지은 죄를 깨끗이 씻으려 합니다! 흙 속에서 온 청

련(靑蓮)이라 할지라도 깨끗한 뿌리(根)로 되돌아가려 합니다!”그것은 마치 부처님이 중얼중얼하는

소리같이 들렸다. 또 불당의 새벽 북소리나 저녁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소리와 같이 손추평

의 귓전을 어지럽게 했다.손추평은 별안간 전신을 오싹 떨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칠비

칠 몇 발자국을 뒤로 물러섰다. 손추평이 뒤로 물러서는 바로 그 찰나에 공중에서 울려 퍼지는 선

창(禪唱) 소리가 분명히 귓전을 스쳐 나가는 것 같았다.그리고 침상 위에 단정하게 도사리고 앉아

있는 세심신니는 마치 붉은 구름장이 떠돌 듯, 아침 놀이 찬란히 비끼는 듯 얼굴 전체가 꽃송이처럼

불그스레해졌고, 미소의 선이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나며, 흡사 부처님이 옷자락을 단정히 여미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앉아 있는 모습과 같았다.천수관음 손추평은 대경 실색해서 목청이 터져라고

소리를 질렀다.”신니 할머님! 다‥‥‥ 당신은‥‥‥ 이게?”고함을 지르는 순간, 손추평의 몸은 이

미 침상 위로 왈칵 덤벼들었다. 손을 뻗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세심신니의 상반신을 밀쳐 봤다.

세심신니의 몸뚱이는 손추평의 손이 닿자마자 그대로 벌렁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신니(神尼)라고까지 일컫던 일대의 유명한 여승은 이미 극락 세계를 찾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속세를 떠나 버리고 만 것이었다.천수관음 손추평은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진

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힐끗 주변을 살펴봤을 때, 세심신니가 조용히 도사리고 앉아 있던 침

상, 나무 관자 위에 한 줄기 글씨가 또박또박 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얼른 그 앞으로 다가

서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자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마음을 바로 먹으면

스스로 괴로움을 모르느니라!’이 몇 자 안되는 한줄의 글귀는 간단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천수관음 손추평도 당장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세심신니 자신을 언제나 스스

로 매질하는 경구(警句)였으리라또 천수관음 손추평더러 봉명장에 돌아가서 천하제일방 방주가

되었다는 정기봉에게 보고하라고 일부러 써 놓고 간